‘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정치인들 보니 비틀 게 많아…정직한 모습, 바람도 담았다”

2020.02.11 21:17 입력 2020.02.11 21:18 수정

총선 후보자, 갑자기 ‘거짓말’ 못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시사성 있는 작품 보면 가슴이 뛰어…10분 만에 연출 결정

평창 올림픽 개·폐회식 때 ‘공무원과 협업’ 경험이 큰 도움”

정치 풍자를 담은 영화 <정직한 후보>의 장유정 감독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등 떠밀려 유감 표명을 하는 정치적 사과가 아닌 상대방의 고통을 통감하고 고개를 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정치 풍자를 담은 영화 <정직한 후보>의 장유정 감독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등 떠밀려 유감 표명을 하는 정치적 사과가 아닌 상대방의 고통을 통감하고 고개를 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지난해 한국 사회. <기생충>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엔 그늘이 졌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각종 사건·사고는 웬만한 스릴러·공포보다 더 큰 긴장감과 불안감을 줬고, 정치인들은 직업 코미디언을 능가하는 웃음을 선사했다. 12일 개봉하는 <정직한 후보> 역시 ‘웃픈’ 현실을 풍자로 녹여낸 코미디 영화다.

영화 주인공은 4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상숙은 할머니(나문희) 덕에 의원이 됐지만, 늘어나는 경력만큼 거짓말 실력도 는다. 선거운동 시작 직후 할머니는 “(손녀 상숙이) 정직하게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상숙은 아무리 애를 써도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 브라질 영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거짓말을 못하게 된 정치인이라는 설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다른 영화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장유정 감독(44)은 “2018년 초여름 김홍백 (홍필름) 대표와 우연히 저녁을 먹다 ‘거짓말 못하는 정치인 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평소 작품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 시사성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던 차라 10분 만에 (연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스크린과 무대, 양쪽에서 인정받는 작가 겸 연출가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 뮤지컬과 <김종욱 찾기> <부라더> 2편의 영화도 연출했다. 대학원에서 언론·영상을 공부하기도 한 그는 “원래 시사적인 것을 좋아한다.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되지 않았으면, 기자가 꿈이었을 만큼 관심이 많았다”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상황에 대한 비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위트나 웃음으로 푸는 풍자 방식이 저와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 주상숙을 맡은 배우 라미란. NEW 제공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 주상숙을 맡은 배우 라미란. NEW 제공

주상숙의 선거운동 기간 14일을 그리는 <정직한 후보>는 각종 선거 관련 풍자를 세세하게 담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실제 사건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장 감독은 “웃음은 공동적으로 양산돼야 하는 것”이라며 “한번도 들어본 적 없거나 너무 과장된 이야기가 나오면 웃을 수 없다. 현실에 비슷한 게 있으니 웃음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현직 국회 보좌관·정치부 기자·시사 프로그램 작가 등을 만나며 시나리오를 채워갔다. 그는 “영화를 준비하며 제일 먼저 들락거린 곳이 국회 의원회관”이라며 “7개 정당의 보좌관·비서관·대변인 등을 만났다”고 했다. 주상숙의 정치인생을 시작부터 함께한 보좌관 박희철(김무열)은 실제 모델로 한 보좌관이 있었다. 장 감독은 “(의원과 보좌관이) 20년 가까이 같이한 것을 봤다. 남매처럼 굉장히 가까이 지내는 두 분을 10일 정도 따라다녔고, 두 사람을 보고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못하게 된 주상숙은 ‘나는 서민의 일꾼’이라는 대표적인 선거 문구를 ‘서민은 나의 일꾼’이라고 말한다. “실제 보고 비튼 게 굉장히 많다. 여야를 막론하고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다녔다. 선거운동 가보면 꼭 당대표가 후보를 업으며 지지를 호소한다. 그러면서 ‘제일로다가 아끼는 후보’라고 하는데 왜 꼭 ‘제일로다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웃음).”

영화는 비리로 얼룩진 사학재단 운영도 중요한 축으로 그린다. 장 감독은 “정치인의 악행이나 위선을 들었을 때 (알아듣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있다. 어려운 것일수록 나쁜 짓을 하기 쉽다. 재단 비리가 좀 어렵지 않나.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 잠정적인 빚쟁이로 젊은 시절을 시작하는 현실에서 사학 비리 전체 금액이 2000억원 이상이라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다양한 풍자뿐 아니라 ‘정치인의 이런 모습을 한번이라도 봤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 그는 “코미디 영화지만, 정치인 주상숙이 자신의 과오로 큰 피해를 입은 약자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며 “기자들 모아놓고 등떠밀려 유감 표명하는 정치적 사과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주상숙이 진심으로 상대방의 고통을 통감하고 고개 숙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게 ‘용기’고 ‘정직’이라 생각했다. 그 장면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꼭 넣을 생각이었고, 다행히 시사를 통과해 잘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부감독, 폐회식 연출도 맡았다. 그는 “올림픽이다보니 총리·장관 같은 행정가, 공무원과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들을 가까이한 경험이 이번 영화에 도움이 됐다. 알고 비트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비트는 건 다르다. 몰랐으면 곡해하고 오해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식상한 공식 질문’이라며 목표나 꿈이 있는지 물었다. 장 감독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제가 만들면서 행복하고, 남들도 보면 행복해지는 작품 작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다음 작품을 뭘 할까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 게 평정심을 주는지 생각하게 된다.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 평정심을 얻는 게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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